전지

전지



한 뼘내고 말았다. 그동안 세린은 말없이감싸주었다. 인간의 체온이란 정말로 따뜻했다. 추위에 떨고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그동안 혼자 버티고 있었던 것이 서러워서 그랬는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세린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죽어버렸어. 다들...죽어버렸어. 그런데도웃고 있어서, 흑, 그래서 미안해." "그래." 세린은 네 탓이 아니라거나 울지 말라는 둥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슬픔으로부터 지켜주려는 듯 더욱 깊숙이 안아주었다. 한 번 말문이 트이자 그 뒤부터는 다.

필요로의 얼굴을 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나는 라디폰 공작이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반응으로 봐서 이들은 오늘 여기서 만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나타난 것 같았다. 아들인 에릭과 오른팔인 이블로에게까지 내 생존사실을 비밀로 하다니. 무서운 것. "그런 말 못 들었어! 괜찮은 거야?" "얼마나 난리가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래도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에릭과 이블로는 목소리를 낮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다시 내게로 쏠렸다. 아무래도 이 곳에서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말했다. "자리를 옮기는 것이 낫겠네. 방으로 올라가자." "따뜻하고 좋은데 그냥 여기서 이야기하면 안될까?" "그럼 로튼 씨는 여기 계십시오. 저희들끼리 올라가지요." 수제노의 말에 로튼은 그 때서야 비로소 뭉그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르다새지면에서 수많은 암석의 창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딱딱한 바위로 이루어진 울퉁불퉁한 창은 예리하게 번뜩이며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그 창은 갑옷 따위는 우습다는 듯 위에 서있던 사람들을 그대로 뚫고 계속 솟구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숨어있는 지붕 근처까지 사람들을 꾄 채올라왔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꼬치처럼 암석의 창에 꽂혀있었고, 흙색의 창 위로 붉은 피들이 강을 이루며 흘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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